시대를 거스르는 진정한 열정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제 1번 D단조, 작품 15

브람스19세기 후반은 대체로 리스트와 바그너의 시대였다. 이러한 와중에 브람스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10세에 이미 실내악 연주회의 피아노 파트를 연주할 정도로 성숙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20세가 되던 해에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아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요아힘은 이 젊은이의 인품과 재능을 인정하여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리스트에게 소개장을 써주었다. 그길로 바이마르의 리스트를 찾아갔으나 리스느 역시 브람스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아 리스트를 떠나게 된다.

바이마르에서 돌아온 브람스는 다시 요아힘의 소개로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 부부를 찾아가게 된다. 슈만은 진심으로 따뜻하게 브람스를 환영하였다. 이러한 슈만의 호의를 결코 잊지 않은 브람스는 슈만이 정신병으로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한 이래 지속적으로 슈만과 그의 가족을 돌보게 된다. 1856년 슈만이 세상을 떠나자 브람스는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슈만의 부인인 클라라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정화하고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해나가게 된다.

1858년 드디어 브람스는 피아노협주곡 1번을 완성하게 된다. 이곡은 실은 5년 전에 피아노 이중주로 작곡되어 클라라와 연습을 거듭하였으나 두 대의 피아노곡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협주곡 형식으로 개작한 곡이었다.

이 곡은 브람스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까닭에 상당히 전통적인 양식에 기울고 있다. 전반적으로 극히 웅장하고 교향곡풍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독주 피아노는 고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어려운 연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서 관현악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현악과 대등한 것으로 되어 있다.

더구나 제 1악장에서 피아노는 고나현악부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악상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곡을 ‘피아노 파트를 갖고 있는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이 피아노 협주곡에서의 관현악 기법은 아직 완숙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청년 브람스의 징풍노도와 같은 정열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의 여러 곳에서 브람스 특유의 관현악적인 담백한 색채의 배열이 눈에 띈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 곡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피아노 협주곡이라면 모두 화려한 비르투오조적인 기교를 자랑하는 것이었고 청중들도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이러한 기교를 무시하면서도 곡 자체는 매우 난해하게 만들었다. 이런 배경으로 외면적으로는 화려한 맛은 없고 어둡고 무거운 정열과 거칠고 떫은 맛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곡의 진정한 맛이 청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하나의 교향곡적인 성격을 갖춘 이 곡은 피아노가 관현악의 한 분자로 녹아들어가 있어 마치 오래된 와인의 텁텁한 타닌 맛이 깊게 느껴지듯 곡이 와 닿아 기분을 더 좋게 만든다.

제 1악장은 Maestoso로 천둥소리 같은 팀파니가 혼, 비올라, 콘트라베이스와 함께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바이올린과 첼로가 산뜻한 제 1주제를 연주한다.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제 1바이올린이 서정적으로 이어간다. 이 부분은 그가 가장 존경하였던 슈만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충격을 그대로 이 주제에 나타냈다고도 한다. 마치 운명에 도전하는 듯한 포효로 맹위를 떨치지만 급기야 거인은 힘이 빠져 땅에 쓰러지듯이 첼로의 반주로 조용하고 호소하는 듯 바이올린이 섬세한 선율을 연주한다.

제 2악장은 Adagio로 독일 레퀴엠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는 행복’의 경건한 주제를 사용하고 있다. 피아노 독주와 바이올린, 비올라가 서로 주고 받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비창의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주제의 재현과 더불어 평정을 되찾아 피아노의 독주 카덴차를 거쳐 약음으로 끝을 낸다.]

제 3악장은 Rondo allegro non troppo로서 당당한 풍채로서 경쾌하면서도 청년다운 정열이 넘치고 있다. 코다부분에서는 베토벤의 영향이 강하게 풍기는데 마지막 부분에 삽입된 독주 카덴차에서 베토벤 제 9번 교향곡에서와 같은 분위기로 승리를 찬양하는 기분의 화려하고 정열적으로 곡을 마치게 된다.

추천음반

  1. 에밀 길레스(피아노), 오이겐 요훔(지휘), 베를린 필 – DG, 1972
  2. 빌헬름 박하우스(피아노), 칼 뵘(지휘), 비엔나 필 – Decca, 1977
  3.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 프리츠 라이너(지휘),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 – RCA, 1954
  4. 루돌프 제르킨(피아노), 조지 쉘(지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 CBS, 1971

오재원 교수_한양대학교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