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시몬 보카네그라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주세페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주세페 베르디 오페라(Giuseppe Verdi Opera)  <시몬 보카네그라>

인간은 평생 수없이 담을 쌓고 살아간다. 귀족과 평민, 동과 서, 남과 북, 멸시와 오만, 적대와 원한 등 갖가지 장벽이 얼어붙은 삭풍처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는 언 땅에서 봄이 꽃피기를 기원하는 오페라이다. 이 작품의 초연도 개정판의 공연도 모두 봄에 이루어졌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제노바에서 평민으로서는 처음으로 총독에 선출되어, 귀족과 평민의 메울 수 없는 균열과 갈등을 완화하려 애썼던 실존 인물이다. 그의 생애를 소재로 쓴 가르시아 구티에레스의 희곡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베르디는 1856년 프란체스코 피아베에게 대본을 의뢰해서 1857년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를 완성했다. 그러나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에서의 초연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전주곡도 없고 주인공이 부르는 아리아조차 특별한 것이 없자 청중들은 실망했다. 그 실패 이후 베르디는 극작가 아리고 보이토의 도움을 받아 개정 작업에 들어갔는데 대본의 전면적인 수정을 원했던 보이토의 의도와는 달리, 베르디의 뜻대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수정에 그쳤지만 1881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개정판이 공연되었을 때는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등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거듭난 베르디는 자신의 위상에 맞는 스타일로의 전환을 위해 단순히 청중을 열광시키는 것보다 인생의 보다 깊고 어두운 면을 소재로 심도 있게 다루기를 원하였다. 그는 이 오페라에서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의 구도를 벗어나 주인공의 내면적 고통과 갈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의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며, 화려함 대신 깊이 있는 영혼의 울림을 들려준다. 흐르는 선율과 유려한 아리아로 사로잡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톤으로 가라앉아 있지만, 시종 극적인 긴장감이 우리를 압도하는 차원 높은 오페라이다.

‘종말은 시작 속에 있다’라는 복선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평민과 귀족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를 기준으로 지중해를 양분했는데 반도 동편은 베네치아가, 서편은 제노바가 해상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해상 무역로를 확보하고 자국의 상선들이 유리한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북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자국의 무역로를 확보했다. 이 양대 국가의 유명한 두 총독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오페라다. 당시 제노바에는 총독이 있었지만 최고위원회가 의사결정기구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는데 귀족과 평민을 같은 비율로 두었다. 귀족은 순번으로 자리를 차지했지만 평민은 직능직 대표가 참가하였다. 당시 도제(doge)로 불리는 총독은 대개 귀족이 차지했으나 평민 후보가 절치부심 끝에 총독으로 선출되는데 그가 바로 ‘시몬 보카네그라’이다. 선원 출신으로 항로를 개혁하는 등의 업적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귀족들에겐 원수 같은 존재였던 그는 연회 도중 자신의 심복에게 독살되면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한다.

프롤로그, 1330년경 제노바의 광장

귀족 피에스코의 딸 마리아는 평민 보카네그라를 사랑한 죄로 아버지에게 유폐되고 만다. 딸을 유폐시킨 아버지는 ‘아버지의 괴로운 마음’을 노래하면서 그의 비통함을 토해낸다. 유폐된 채 아버지의 저주를 받으면서 딸은 죽어가고, 보카네그라는 세상이 꺼져가는 슬픔에 잠기지만 그 슬픔을 딛고 평민들에 의해 총독에 선출된다.

제1막, 25년 후 바닷가 정원

25년의 긴 세월이 흐른 후, 아멜리아의 노래 ‘이 어두운 새벽에’로 막이 오른다. 그리말디 백작 부부의 양녀 아멜리아는 양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안드레아라는 노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때 가브리엘레의 노래 ‘하늘에는 별조차 흐려 있고’가 들려온다.

아멜리아와 귀족 청년 가브리엘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의기투합 하여 보카네그라의 평민 정권을 뒤엎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영문을 모르는 보카네그라는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멜리아를 만나러 온다. 파올로와 아멜리아의 혼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멜리아가 자신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실종되었던 딸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때 보카네그라가 눈물을 흘리면서 부른 ‘내 딸아,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구나’는 이 오페라의 가장 감동적인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부녀 관계임이 밝혀지자 아멜리아는 총독 관저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지만, 그때부터 갈등의 씨는 더욱 커간다.

제2막, 총독의 방

혼담이 무산되자 아멜리아를 납치하고 보카네그라를 암살하려는 파올로, 부녀 관계임을 모르고 그들 사이를 의심한 가브리엘레의 질투 등 흉흉한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보카네그라는 외친다. “평민이여! 귀족이여! 잔인한 역사에 얽힌 사람들이여!”라며 외치지만 소용돌이 속에서 독살된다. 독살자는 가브리엘레나 귀족이 아닌 내부의 적 파올로였다.

제3막, 총독의 궁전

갈등의 봉합과 화해를 위해 그토록 애썼던 보카네그라는 가브리엘레를 후임 총독으로 지목하고 딸 아멜리아를 부탁하면서 마침내 숨을 거둔다. ‘시몬의 영혼에 안식과 평화를!’이라는 군중의 기원과 함께 종이 울릴 때, 그들의 가슴은 미어질 듯 뜨거운 눈물로 벅차오른다. 이처럼 얼어붙은 삭풍처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무겁고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 마지막 장면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것, 그것이 베르디의 의도였을 것이다. 군중들은 “한 맺힌 시몬의 넋이 묻힌 그 땅에 봄이여 솟아오라”고 오열하며 막을 내린다.